이제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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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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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이제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0, (금) 9:58 am

이제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

이제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
한국불교가 변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최근에 들어와서 한국불교에 대한 토(吐)를 다는 분들이 많이 늘고 있다. 토란 무엇인가? 어떤 말에 덧붙여 한마디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낱말이다. 한자에 우리 말 토를 달아 놓으면 그 뜻이 명확해진다. 본래의 의미는 좋은 뜻으로 사용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어떤 문제에 좋지 않는 군말을 덧 붙여 반대나 은근히 비꼬는 의미로도 쓰이는 것 같다. 여기서도 후자의 의미로 써서, 지금 한국불교에 대한 토 다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도나도 한마디 한다는 것은 말이 많다는 의미이다. 종단에서 무슨 대책을 내세우면 토를 달면서 불신부터 한다. 사사건건이 부딪치는 소리뿐이다. 지금 재가단체도 확실하게 신뢰가 가는 단체가 없는지 말발이 먹히지가 않는 것 같다. 승가나 재가나 지금 무슨 말을 하고 메시지나 성명서를 내 놓으면 감동을 받지 못한다. 다 시원치 않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 불교사에서 지금처럼 불교의 권위와 승가의 권위가 추락한 적이 없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고려시대 말경, 비단 옷에 좋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호사를 누렸던 때에도 지금처럼 그렇게 권위가 떨어졌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고려불교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이 시행되는데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불교가 탄압을 받고 5백년간 산중불교화(山中佛敎化)한 하나의 이유가 되었음직하다.

한국불교는 변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를 일이다. 1천7백년 한국불교사에서, 한국불교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안개속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견이다. 승가가 재가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재가 또한 승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툼도 불사하게 된다. 승가와 재가의 다툼은 엄청난 사건이다. 한 종교의 구성원들 간에 불신과 신뢰가 깨진다면 그 종교단체의 운명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는가. 근래에 와서 우리 불교계는 내란(內亂) 성격의 분쟁이 연일 그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승가의 일부 스님들이 도박, 은처(隱妻=처를 숨겨놓다) 등으로 인하여 의혹을 산 이후부터이다.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지만, 일부 재가 불교지도자들은 이런 의혹에 대해서 어떤 확신을 갖고 이를 바로 잡아 규명하려는 집회와 성명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편에서는 일부 재가 불교지도자들이 오히려 이것을 비호하고 은폐하는데 일조를 하는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해서, 우리 불교계는 더욱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대체적인 분위기는 승가 내에 뭔가 좋지 않은 비밀이 공공연하게 흐르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청정하다면 이런 따위의 불미스러운 루머나 의혹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시급하게 변해야할 것은, 사찰운영의 합리화이다. 합리적인 재정운영이 이루어져서 불교가 활성화 할 수 있도록 전법과 포교에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승가에 지나친 간섭일지는 모르지만, 불교의제(衣制)와 의식(儀式)의 간소화 문제이다. 가사 장삼 두루마기부터 하나로 통일할 수 없는지 그리고 색상도 승가 본래의 색상대로 변화하고, 불공 시식 천도재 사십구재 같은 불교의식도 간편하게 개혁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는 충분한 토론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시대에 맞지 않고 신도들에게 신앙상으로 지나친 부담을 준다든지 별 호응을 받지 못한다면 개선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식의 사찰운영이나 의제의식으로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경쟁력이 가능하겠는가 하고 걱정이 된다. 언제까지 이렇게 전근대적인 모습의 불교를 보여준다면, 교세는 갈수록 약화되고 언제 우리사회에서 소외되고 멀어져 가는 옛 역사 속에서나 존재했던 종교로 전락한다면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요 잘못이다. 뭔가 시대에 부응하는 종교로서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과감한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시대는 급변하는데 정작 우리 불교는 제자리에서 그대로 빙빙 돌고 있다면, 이것은 정말 불행한 전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승가나 재가나 시대상(時代相)의 흐름을 읽고 불교가 어떻게 변해야 산다는 정견(正見)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실상(實相)을 보는 안목 또한 중요한데, 이런 정견을 갖는 분들의 부재(不在) 또한 우리 불교계의 아픔이다.

그동안 불교계에는 많은 재가 불교지도자들이 있었는데, 근래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있어봐야 소외되고 전연 사찰운영이나 종단권력에의 참여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고 오히려 모함이나 받고 푸대접이나 받는 상황에서는 누가 붙어 있으려고 하질 않는다. 그렇다고 홀로서기를 해보려고 하지만, 이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가하면 승가의 비호를 받고 혜택을 받는 일부 재가지도자들 또한 철 밥통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보다 더 나은 자들을 은근이 시기 질투하고 뒤통수나 치는 소인배들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종단의 중진 스님이 종회의원직을 사직하면서 하는 말이, 상좌 벌 되는 젊은 종회의원들로부터 야유를 당하고 망신을 당해서 체면을 구기느니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그나마 자신의 체면을 살리는 길이라면서 의원직을 내 던진 것을 보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종단의 풍토는 그렇게 악화되어 있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까지 거론하노라면 끝이 없다.

문제는 시대의 변화를 읽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정말 존재 그 자체가 어렵다는 위기감을 느꼈으면 한다.

해동 선림원=지도법사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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