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86년 9월 불교신문 미주서부판 발행중지에 얽힌 내막

BUTTON_POST_REPLY
lomerica
전체글COLON 427
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5) 86년 9월 불교신문 미주서부판 발행중지에 얽힌 내막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09, (월) 9:43 am

86년 9월 불교신문 미주서부판 발행중지의 내막을 보면서, 그 오류가 무엇인지 현대 불교학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담론으로 잠시 언급해 본다. 그리고 86년도까지 나의 불교관련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곁들여 본다.
ahnstitle1.jpg
ahnstitle1.jpg (178.44 KiB) 581 번째 조회
우선 위 사진 설명을 통해 옛일을 기억해 본다 왼편은 내가 80년 10월 미국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도안스님 안내로 범종사 김철오 사장과 함께 아리조나주 그랜드 캐년을 관광했을 때 동행하셨던 설조스님과 같이 포즈를 취한 기념사진이다. 그리고 오른편은 83년 내가 라스베가스에 있을 때, 법타스님이 처음 미국에 오시어 코로라도에 있다가 서부로 오던 길에 라스베가스에 들리어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ahnstitle2.jpg
ahnstitle2.jpg (236.96 KiB) 581 번째 조회
그리고 위 사진은 86년 LA관음사가 3가와 옥스퍼드 건물로 옮기기 전, 세라노에 있을 때 마지막 초파일 행사를 치룬 뒤에, 뜰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ahnstitle3.jpg
ahnstitle3.jpg (235.29 KiB) 581 번째 조회
그리고 위 사진은 86년 7월 여름 불교교양대학을 개설(세라노-관음사 뒷채, 공간), 2개월간 강좌를 위해 한국에서 이영무교수가 오시고, 김구산교수가 세크라멘토에서 와 있었는데, 그때 마침 미국을 방문하셨던 이용택 의원이 관음사를 들리게 되어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이다.(사진-왼편부터 이영무교수, 김구산교수, 이용택의원, 도안스님, 필자-김안수)

이용택 의원은 나와 어떤 인연이던가, 이를 간추린다.
1974년 중앙정보부 제6국장으로 있었던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인혁당 사건, 박정희 저격 미수 주범 문세광을 심문하는 데 관여했다는 사실은 요즘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이용택 회장을 만나게 된 것은 정보부에서 나온 뒤 고향 경북 달성군 성주 대흥사 일을 돌보던 중 1976년 7월 조계종 전국신도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안현철 선배의 주선으로 이용택 회장을 알게 되었고, 그 때 나는 청소년교화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이용택 회장을 청소년교화연합회 회장으로 영입했던 것이다. 청소년교화연합회 회장에 있으면서 1978년 대한지적공사 사장으로 있었고, 그 때 나는 이미 국제불교도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그 뒤 이용택 회장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달성군-고령군-성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김종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83년엔 나는 이미 미국으로 이민해 왔던 때였고, 이용택 회장은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86년 이때 이용택 회장은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 회장에 있었고, 희생동포현장 조사차 사이판에 가던 중 미국을 경유하게 되어 관음사에 들리게 되어 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86mua1.jpg
86mua1.jpg (160.68 KiB) 581 번째 조회
위 스캔자료의 글은 1986년 2월 창간한 불교신문 미주서부판이 손무아 법사 기고 글로 말썽(샌프란시스코 설조스님 문제제기)이 되어 9월호를 끝으로 신문을 휴간하게 되었는데, 30년이 지난 이제사 이를 찾게 되었다고 2016년 3월 뒤늦게 근거자료라고 해서 내게 전달한 것을 발췌한 것임. 당시 손무아 법사(실달태자에게 셋의 자식설)의 글은 문헌근거를 밝히지 않은 탓으로 그리고 그 뒤 당사자로부터 곧바로 해명이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글을 게재한 것에 대한 발행편집자로서 책임을 지고 부득이 취해진 조치였다.
86mua2.jpg
86mua2.jpg (140.15 KiB) 581 번째 조회
위는 앞의 스캔자료에서 문제의 핵심 글귀를 확대하여 세밀히 분석해 살필 수 있도록 다시 그 부분만 확대스캔한 부분이다.

문제의 오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여기에 발췌된 스켄 글은 만해스님께서 발간했던 [佛敎]지 합본을 따로 참고해 볼 수 있도록 {新佛敎}라는 묶음철에 올려진 내용 중 하나임. “원효의 여성관”이란 제목으로 된 기고자의 글 속에 소개된 내용임.

문제(오류)된 글(실달태자에게 셋의 자식설) - 인용의 근거로 밝힌 부분.
[그러면 迷悟를 勿論하고 對境生活 感覺生活은 同一할 것이니
悉達太子도 淨飯王宮에서는 三人의 愛妻와 三人의 子息이 있었든 것이다.
第一妻0夷는 水光長者의 따님이고 第二耶輸는 移施長者의 따님 第三鹿野는 釋長者의 女息이였고 長子善星은 鹿野와의 子이며 次子優婆摩耶는 0夷의 出産 三子羅喉羅는 耶輸와의 子이다.
이것은 佛本行經 五夢經 十二遊經等의 記錄이나, 特히 善星은 涅槃經에 依하면 釋迦가 二十五歲에 出家入山하여 三十歲에 成佛下山後 鹿野와 관계....]

우선, 분석해 보면 인용의 글이 北傳 佛本行經 五夢經 十二遊經等 그리고 涅槃經이라 했고, 그것도 二十五歲에 出家入山하여 三十歲에 成佛한 것으로 해서 추산하고 있다. 이에 의한 추리적 思考를 하면서 悉達太子가 三人의 愛妻와 三人의 子息이 있었든 것으로 단정해 버린 점이다.
南傳 경전에서 밝히고 있는 것(二十九歲에 出家入山하여 三十五歲에 成佛)과 대조하면 엄청난 오류다. 북전의 오류를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 참으로 난감하다.

더 이상 이에 대한 변명이나 의견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다시는 이러한 인용의 오류가 없도록, 글 쓰는 이들은 주의를 기우려야만 할 것임을 밝히고자 할 뿐이다.

<2016.8.4> 30년전을 회고하며, 제월무염 김안수(법사)
BUTTON_POST_REPLY

다시 돌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