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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11-29, (화) 5:4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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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이해 영역…”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 기념세미나서 주장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세미나에서 선정이 불교의 핵심 수행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선정이나 삼매 없이도 깨달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이같은 주장은 조계종 스님들의 수행관과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반발과 논란이 예상된다.

“부처님은 고행을 통해서도 아니요, 선정을 통해서도 아닌 논리적인 사유와 성찰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설법, 토론,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부처님은 가르침을 청할 때 삼매와 선정을 통해 수련하라고 지도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선정이나 삼매 없이도 충분히 깨달음이 가능하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자신이 1990년 펴낸 ‘깨달음의 역사’ 발간 25주년을 맞아 9월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선정이나 삼매 없이도 깨달을 수 있다”며 “불교의 요체는 ‘이루는 깨달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깨달음’에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쳐 큰 논란이 예상된다.
현응 스님은 ‘깨달음과 그 역사, 그 이후’라는 기조발제를 통해 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주장했다. 스님에 따르면 현재 조계종에서 깨달음을 위한 수행은 평생에 걸친 과업이다. 깨달음을 위한 노력은 3개월, 6개월 정도로는 언급조차 할 수 없고, 여러 해가 지나고 수십 년 이상을 참선 수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수십 년을 투자해도 현실적으로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보기 힘들어 돈오(頓悟)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라는 것이다.

스님은 “깨달음은 불교도에게 선결과제이자 기본요건이기 때문에 깨달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에는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다”며 “한국불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목적에서 ‘깨달음’을 이해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먼저 한국불교에서의 깨달음이란 ‘몸과 마음의 완성된 경지이자 모든 번뇌를 끊고 고매한 인격을 이룬 높은 경지’로서 ‘깨달음’ ‘확철대오’ 등으로 표현한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어 이렇게 정의하는 깨달음은 대단히 추상적으로, 깨달음이란 것을 이렇게 모호하게 설정해서는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의 방법도 불분명하고, 깨달음의 성취 또한 어느 수준의 어떤 것을 말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평생을 노력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까닭도 깨달음이라는 내용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율장인 ‘마하박가’의 내용을 인용하며 부처님은 삶의 괴로움을 연기의 관점, 즉 원인, 조건, 생성, 소멸의 관점으로 통찰하고 이해하는 내용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서술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부처님을 각자(覺者)라 할 때 그 깨달음은 연기관의 이해를 확립함이며, 삶의 괴로움의 문제를 이러한 통찰과 이해로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부처님이 녹야원의 첫 설법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며칠이 걸렸다는 부분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부처님이 ‘납득시킨다’는 말을 썼듯이 깨달음은 곧 이해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특히 납득시키는 방법도 선정삼매를 통한 것이 아니라 밤낮 없는 대화와 토론이었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만일 깨달음을 ‘올바른 이해’라고 한다면 그러한 깨달음을 얻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아마 우안거 기간 중에 부처님을 포함한 61명은 집중적인 설법과 토론을 했다고 짐작된다”고 강조했다.

현응 스님은 일반적으로 ‘알아차림’ ‘마음챙김’ 등으로 번역되는 사띠(念, 憶念)를 ‘잘 기억하여 그 내용을 사유하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기록이 없던 시대에 공부하는 방법이 사띠(기억하여 사유함) 외엔 달리 없었으며, 부처님 제자인 비구스님들을 성문제자라 부른 것도 가르침을 기억으로 수행하면서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승하는 사람임을 특징지어 표현하는 말일 것으로 추정했다. 스님은 그러나 사띠가 부처님 설법내용을 기억하고 사유하는 방식에서 특정한 주제나 내용으로 재정리해 이것들을 삼매(선정)와 결합한 위파사나 방식으로 성찰하는 식으로 변화해갔다고 지적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는 층위가 생겼고, 그 기준에 사선, 팔정, 구차제정 등 선정의 수준 정도도 포함되는 등 ‘이해하는 깨달음’에서 ‘이루는 깨달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중국불교도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등 매우 높은 수준의 다양한 불교학파를 이뤄 경쟁적으로 자파의 교학을 탐구하고 선양하면서, 중국불교는 심오하지만 난해한 교리를 전개하는 학자들의 불교가 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스님은 간화선도 기억의 수행법임을 역설했다. 스님에 따르면 간(看)은 ‘잘 살펴보다’는 뜻이며, 화(話)는 이야기나 대화라는 뜻이다. 간화선은 조사스님들의 설법이야기나 주고받은 대화를 잘 기억했다가 수시로 사유하는 수행인 것이다. 이런 선불교의 간화선은 인도 사띠 수행의 중국적 변용으로서, 다만 같은 점은 사띠든 간화선이든 둘 다 설법내용이나 대화를 늘 기억하여 성찰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송대를 지나 원대에 이르러 ‘이야기(화두)’ 속의 특별한 구절이나 단어 한 글자마다 마음을 집중하거나 의심하면서 선정에 깊이 드는 방식으로 변했고, 이때부터 선, 또는 간화선은 외형적으로는 좌선을 중시하는 앉은뱅이 불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간화선은 선정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행주좌와나 일상에서도 가능했지만 원나라 몽산선사가 선정위주의 간화선을 제창하고, 우리나라 서산대사가 ‘선가귀감’에서 말하는 선도 몽산선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는 게 스님의 견해다.

현응 스님은 “은유, 파격, 역설의 선적인 이야기를 평소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음미하며 그 의도와 핵심을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 기존의 간화선 방식이라면 특정한 어구(語句)에 집중해 선정에 깊이 드는 것을 강조하는 선은 그 성격과 패러다임이 전혀 다르다”며 “선정위주의 참선을 조계선이나 간화선이라 호칭하는 것은 부정확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스님은 또 “선정과 삼매로서 마음을 닦아 깨달은 마음으로 만들려는 것은 각종 화학적 재료를 섞거나 변용해 금을 만들려하는 연금술을 닮았다”며 “사람들은 이제 연금술을 믿지 않거나 그 효용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마음의 연금술 또한 도인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환타지가 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치르는 대가가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현응 스님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무엇이고 어떤 방법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걸까. 현응 스님은 “깨달음이란 연기와 공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규정했다. 스님은 이어 “연기나 공에 대한 내용 자체가 워낙 합리적이며 과학적이라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만 있으면 그 개념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간화선은 좌선의 자세로 앉아서 선정삼매 속에서 무념의 참선 경지를 이루거나 특정 어구를 의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한편 현대사회의 또 다른 사띠 공부는 경전과 어록, 다양한 독서를 하면서 탐구하는 마음으로 사유하면서 읽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님은 깨달음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스님에 따르면 깨달음이 연기를 잘 이해하는 영역이라면, 역사는 방향과 내용을 선택해 구체적으로 행위 하는 것이다. 즉 역사는 지혜와 대비되는 자비의 영역으로, 윤리, 정의, 평화, 공정, 평화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스님은 “깨달음과 역사는 분리돼서는 안 되며 오히려 다른 차원의 두 영역을 하나의 삶에 결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디(깨달음)’만 있고 ‘사트바(역사)’의 영역이 없으면 소승적 아라한일 뿐이며, 보디가 없는 역사행은 범부중생의 삶일 뿐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특히 “깨달음과 역사는 다른 차원의 영역이지만 이 둘을 결합하면 ‘보디사트바(보살)’가 된다”며 “연기와 공을 잘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어 존재들의 변화성과 관계성을 통찰함으로써 실재의식으로부터 해탈한 자유정신을 얻은 자가 곧 아라한으로, 그가 살고 있는 역사에 현실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마음을 내서 실제로 각종 바라밀(다양한 방편행)을 하는 사람, 이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고 밝혔다.

현응 스님의 이같은 파격적인 주장에 대해 이날 지정토론으로 참여한 학자들은 한결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현응 스님의 글은 기존 불교에 익숙한 사람들을 굉장히 불편하게 한다”며 “현응 스님은 불교 밖에서 불교를 바라보고 전통의 바깥에서 전통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현응 스님이 주장하는 ‘이해하는 깨달음’이란 사물을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투철하게 보는 것(照見)’이 깨달음으로 이 깨달음을 깊이 실천하는 것(行深)이 바로 나와 세상을 두루 구제하고자 하는 보살행”이라고 밝히고 “이제 오랜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불교의 전통을 새롭게 갱신하고자 하는 열망이 바로 '이해하는 깨달음'이요, 깨달음과 역사가 둘이 아님을 재확인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홍창성 미네소타주립대학 철학과 교수는 “현응 스님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사실에 대한 진리인 연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고, 역사 속에서의 실천이란 불교에서는 자비행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당위의 영역에 해당한다”며 “나 자신도 현응 스님의 말대로 깨달음이 역사와 자비의 영역과 만나야 하며 자비가 깨달음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행위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정경일 새길기독교사회문화원장은 현응 스님의 성찰을 깨달음의 탈신비화, 깨달음의 탈경계화, 깨달음의 탈종교화라는 3가지 주제로 분석한 뒤 이를 ‘불교의 현대화’로 요약했다. 그는 “현대화의 핵심은 당대적 문제와 상황을 연기의 지혜와 자비로 철저히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며 “오늘의 불교가 직면하고 있는 종교적 다원성과 사회적 고통이라는 현대적 상황에 충실히 참여하며 응답할 때 불교의 깨달음은 모든 종교에게, 아니 모든 인류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남 대흥사 일지암 암주이자 교육부장을 역임한 법인 스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는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과 현응 스님의 답변이 오고갔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비롯해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 윤창화 민족사 대표 등은 현응 스님의 주장에 깊은 공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응 스님의 견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은 초기경전인 쌍윳따니까야의 내용을 언급한 뒤 “연기를 깨달았다는 것은 이해가 아닌 체험이고 그 체험은 선정 수행을 통해 실현된다”며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을 포함하지만 더 나아가 체험적으로 증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경전에도 부처님은 무색계 사선정과 멸진정에 이르러 연기를 사유하고 새벽에 도를 깨쳤다고 명시돼 있다”며 “현응 스님은 경전의 근거를 무시하고 개인적인 사견으로 연기와 깨달음을 오도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김재성 능인불교대학원대 교수도 “오비구가 부처님의 대화로만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선정을 통해 깨달았음이 경전에 분명히 나와 있다”고 지적하고, “아난존자가 기억력이 탁월했지만 아라한과를 얻지 못해 처음 결집에 참여하지 못했던 점도 간과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보신문(2015.9.6)/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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