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11 한국불교, 관념불교에서 탈출하여 현실문제에 눈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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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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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기획시리즈-11 한국불교, 관념불교에서 탈출하여 현실문제에 눈을 뜨자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2, (목) 1: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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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붓다고사(5세기)비구가 위숫디마가(청정도론)를 저술하여 비구승가에 헌상하고 있다.

나는 50년대 말부터 불교를 접해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본 산사(山寺)는 신비로웠다.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다. 칠성각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응진전에서 나한상들을 보면서 정말 낯선 문화에 대한 각인이 엄청났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가서 칠성단에 불공을 드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뜨고 안계셨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무심결에 이야기해서 정말 감회가 새로웠던 기억이 난다. 종교와 문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고 평생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에는 동네에 있는 큰 정자나무 아래에 와서 염불하는 장면을 봤다. 아마도 동네에서 스님들을 모셔다가 안택기도를 드렸다고 생각한다. 스님들이 검은 승복을 입고 홍(紅)가사를 수하고 있었다. 일제로부터 독립한지가 14년 정도 지났지만, 6.25를 겪고 사회가 안정되지 않았던 자유당 말기였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서울에서는 불교정화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서 전국의 사찰에서는 밀고 밀리는 사찰분규가 일고 있었지만, 내가 살고 있던 시골 절에는 아직도 일본식 승려가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60년대 중반까지도 일부의 스님들은 검은 승복에 홍 가사를 수하고 있었지만, 서서히 회색 승복으로 바뀌고 가사도 지금의 괴색가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의 태고종이나 일부 군소종단의 승려들은 그대로 회색 승복에 가사만큼은 홍 가사를 그대로 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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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스코틀랜드 카규파 삼예링 사원에 모셔진 나가르주나(용수 150-250AD)보살.

60년이 흐른 지금 한국불교의 모습을 보면, 외형상으로는 많이 변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를 살았던 누군가가 기억하는 한국불교의 모습은 또 다른 이미지일 것이다. 누군가가 죽지 않고 조선말, 조선 초, 그리고 고려시대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한국불교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는지 모르겠다. 많이 변했다고 할 것이다. 한국불교 1천 7백년사에서 부침이 너무나 컸다고나 할까. 시련이 많은 우리 불교사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왈...,‘비록 외형은 이렇게 많이 변했지만, 도대체 그놈의 생각(관념)은 왜 이렇게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중국에서 불교를 수용할 때, 교학(敎學) 불교가 들어왔고, 나말여초(羅末麗餘)에는 선불교가 들어 왔다. 하여서 선교(禪敎)가 균형을 이루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대강의 큰 줄기이다. 교학으로 본다면 화엄 천태 법화 정토 금강(공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선불교는 남종선의 간화선법이 강하게 뿌리를 내린듯하다. 하지만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구한말에 이르기 까지 선교겸수의 전통이 대세를 이룬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시점에서 보는 한국불교는 균형을 상실한 듯해 보인다. 선(禪)의 우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이다. 사실, 교학의 핵심은 화엄 금강 법화 유식 등인데, 한문경전어(漢文經典語)에 의한 교학 연마가 아닌, 일본학자들이 풀어 놓은 이론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불교도 일본 학자들이 저술한 선학(禪學)이란 이론불교에 의거한 풍조가 대세이다. 게다가 서구의 학자들의 문헌학적 학문방법론에 의한 철학적 관념론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저것 복잡한 이론적 관념적 담론이 지배적이다.

필자의 논점은 이런 경향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보자는 주장인데, 포인트는 간단하다. 관념적이고 논리적으로만 불교를 접하지 말고, 실천적으로 접근하자는 주장이다. 남방 상좌부 전통으로 보면 역사상으로 많은 비구 삼장들이 수없이 명멸했을 것이지만, 붓다고사 같은 삼장은 비구로서 철저한 승원주의를 고수한 분이다. 대승불교의 최고 학승인 나가르주나(용수)나 아상가(무착) 바수반두(세친) 등이 다 승원에서 빅슈로서의 위치를 지킨 분들이다. 티베트에 날란다학통을 이은 고승들도 다 승원주의를 고수한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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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낙양 용문설굴에 모셔진 현장법사(602–664)상.

서역에서 중국에 온 고승들도 또는 역경승들도 다 사원에서 기거하면서 불교를 전파했던 분들이다. 현장삼장법사는 사원을 떠나 본적이 없다. 비구로서 빅슈로서의 위치를 지키면서 불교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저술을 남긴 분들이다. 이것은 불교의 전통이요 승가의 규칙이다. 율(律)을 지키면서, 비구나 빅슈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지성이 영악해졌다고 할지라도, 불교란 종교의 특색은 승원에서 승가공동체에서 수행하고 교육하고 전법하면서 석존(釋尊)의 가르침이 유통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자. 불교교학이나 선학에 무식한자가 별로 없을 정도로 불교가 널리 퍼져있다. 관념적이고 이론적이고 너무 철학적인 불교담론만 펴는 것 보다는 때로는 실천적 수행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천적 수행이나 명상 경험도 없이 이론만 전개하는 분들을 보노라면 식상(食傷)한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너무 설만 푸는 담론을 전개할 것이 아니라, 실천적 불교 수행으로 보강하자는 것이고, 승가공동체 경험은 꼭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너무 실천에 치중한 나머지 이론이 부족한 분들을 보는데, 이 또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본다. 몇 십 년 참선하면서도 법문한마디 안 한다면 깨친 것인지 아니면 졸기만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런 명상을 꼭 해야 하는지 회의적일 뿐이다. 필자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생산적이고 현실참여적인 불교를 하자는 취지이다.

일정기간 공부하고 수행했으면 전법포교는 기본이다. 수행과 이론을 겸전하는 균형을 일차적으로 이뤄야하겠지만,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면 중생들에게 사회를 향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전법포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것은 불교의 생존과 관련된 시급한 한국불교의 현안이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 분들은 불교적 입장에서 중생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지금 분위기가 은둔해버리고 나서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풍조이다.

갈수록 교세가 약해지고 불교신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우리 불자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더 큰 책임은 포교사(법사)들을 증(證)만 주고 할일 없이 놀게 만드는 일이다. 생계보장까지는 아니지만, 교통비라도 주면서 활동하게 하는 길만이 한국불교가 살길이라고 본다. 본사를 비롯한 모든 사찰에 필히 법사(포교사)를 배치해서 불교를 활성화해야 한다.

관념불교가 무엇인가. 실천이 없는 이론만의 불교를 말한다. 공동체에서의 경험도 없이 어떻게 남에게 불법을 펼 수 있단 말인가. 현실문제에 적극 참여해서 불교적 관점에서 해결하고 협력해 가는 적극적인 불교적 사회풍토를 조성해 가자는 취지에서 이런 칼럼을 써본다.

해동 선림원 지도법사=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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