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7 한국불교, 은둔형에서 참여형으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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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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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기획시리즈-7 한국불교, 은둔형에서 참여형으로 전환해야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2, (목) 1:24 pm

사진1:비구들이 함께 모여서 우포소타(uposatha 布薩) 법회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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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재론의 여지없이 불타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더 부연한다면, 부처님께서 설시(說示)하신 지남(指南)을 따라서 수행하고 전법포교 하는 것이다. 불교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명제이다. 수행을 떠나고 전법 포교를 떠나서 불교를 생각할 수는 없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승가공동체가 필요하고 규칙(율장)이 필요하다. 율장(律藏)을 떠난 승가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현대의 승가 공동체는 율장보다는 종헌종법(宗憲宗法)이란 근대적 법치주의에 입각한 법 이론을 도입하여 승가운용의 모법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의법대로 하지 않고 초법적인 불법(不法)이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율장은 그저 승가의 오랜 전통이나 유물 정도의 사문화(死文化)된 율장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학술적 연구 대상 정도로 격하되어 버렸다. 사회가 복잡하고 불교의 승려도 그 사회의 일원인 이상 사회법을 준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사회의 세속법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하는 종헌종법을 제정해서 운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승가의 문제가 세속법에 구속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종헌종법도 때로는 사회법의 판단이나 유권해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종교법은 세속에 규율되고 있는 것이 21세기 현대사회이다.

불교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율장은 학문의 대상이 될 정도로 격하되어 버렸지만, 이것은 한국 불교에서의 이야기이고, 남방불교에서는 아직도 율장이 승가규율의 기준이 되고 있다. 남방불교의 비구들은 율장에 철저하지만, 북방 대승권은 율장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율장은 이미 사문화된 고문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종헌종법이나 사회의 실정법만 범하지 않으면 율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승려생활을 즐길 수가 있다. 이렇다보니 교묘하게 이런 법망만 피하면 된다는 주의가 팽배해 있다. 왜 이런 논리를 펴는가 하면, 지금 우리 불교는 너무 은둔형 불교를 하고 있기에 지적하는 것이다. 수행을 위한 은둔이라면 모르겠으나, 단순히 편안함을 추구하는 안일한 은둔이라면 이것은 수행이 아닌 도피요 무사안일주의적인 나태일 뿐이다. 사설사암의 가장 단점은 이런 은둔형 불교의 베이스가 된다는 점이다. 사설사암이 많을수록 불교신자 수가 늘어나야 하는데, 불교신도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절을 찾는 신도들의 발걸음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 신자수의 감소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수행자들의 은둔형 불교는 전법포교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형성되면 조용히 지내려고 하는 것이 하나의 풍조가 되어버렸다. 이런 행태는 불교의 기본 정신에 철저하게 어긋나는 행위이다. 부처님은 길에서 살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신도들을 감싸않으셨다. 물론 우기에는 일정한 장소에서 조용하게 지내셨지만, 우기에도 부처님은 제자들의 공부를 점검하고 신도들을 만나서 법문을 들려 주셨다. 결코 혼자 은둔하시지는 안했다는 이야기이다. 처음 입문해서 수행하는 기간에는 당연히 사원에서 조용히 은둔해서 공부하는 수행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일부러 조용히 은둔하는 수행자가 있다면, 이것은 불교의 근본목적에 맞지 않는 자신만을 위한 안일한 수행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불교는 도교적인 불교라고 할 수 있으며, 도교적인 도승(道僧)이라고 해야지 불교의 승려라고 부르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어느 정도 수행기간이 끝나면 전법포교에 나서는 것이 사문의 도리가 아닌가 한다. 한국불교는 최근 20년 사이에 전법 포교는 뒷전이 되어 버렸다. 종무행정이 가장 중요한 승단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장 경계하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할, 정치적인 사무에 에너지를 너무 쏟고 있는 것은 불교가 특히 종단이 정치적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물론 행정도 필요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일도 전연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사판적인 일은 출가사문의 본분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들은 어느 정도 일정부분 재가에게 맡겨야 한다. 스님들은 보다 수행 전법 포교에 매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런 종무에 시간을 뺏기다 보면, 수행 전법 포교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사진2: 2014년 10월 유럽 전역에서 모인 불자들이 독일의 한 도시에서 집회를 열고 티베트 불교 라마의 법문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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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불교를 심각하게 다시 생각할 때가 도래했다. 그동안 너무 만성화된 불교에 젖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역할 분담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교적인 은둔형 불교에서 참여형 불교로 빨리 전환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20년 30년 후에 어떤 불교환경이 될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한국사회의 종교지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너무나 명확한 일이 아닌가. 다른 나라 불교는 비교적 잘 돌아가는데, 우리 한국불교는 어인일인지 이상하게 자꾸 꼬여가는 느낌을 받는 것은 필자만의 감상주의적 노파심인지 모를 일이지만, 정말 걱정된다. 이런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은둔형 불교를 청산하고 참여형 불교로 전화해야 활로가 열린다고 확신한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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