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6 한국불교, 부처님승가에 가까워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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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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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기획시리즈-6 한국불교, 부처님승가에 가까워져야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2, (목) 1:22 pm

글로벌 불교에 대한 필자의 경험은 낙관 비관이 교차한다. 남방 상좌부 불교를 본다든지 티베트 불교를 보노라면, 비교적 승가가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고, 중국 불교를 접하면 이제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일본불교는 이제 노쇠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것은 너무나 세속화되어 버려서 느끼하다는 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는 어떤 위치에 있다고 보는가이다. 적어도 남방 상좌부나 티베트 중국불교와 비교해 보면, 어딘가 좀 부족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감상주의일는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잘못 굴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실론불교는 인도불교의 원형을 물려받았고, 이 인도적인 승가의 원형과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유지하다가 버마를 비롯한 태국 등지에 전파했는데, 인도불교의 전통에 대한 역사나 빨리어 삼장을 보존하고 보급한 전법의 공로는 실론불교의 장점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실론이 섬이고 한때는 남인도의 침입도 받고, 서구열강의 식민지화 길목에서 피해를 입다보니 실론승가는 그로기상태에 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실론불교는 버마와 시암에 전파했던 불교를 다시 받아들인 역수입한 불교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실론불교의 우여곡절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론불교의 교학체계와 아카데미즘은 매우 선진적이며, 인도불교 부흥에 일정한 역할을 했고, 현재도 어느 정도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음은 그나마 실론 불교의 자긍이라고 하겠다. 인도불교나 실론불교의 원형을 알기 위해서는 실론의 사서(史書)를 외면하고서는 복원이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결론이다.

사진1: 실론의 비구들이 스투파 주위를 돌면서 빨리삼장을 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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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출신의 비구들은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그것은 세계 공통어인 영어에 능통하다는 것이 큰 무기이다. 게다가 빨리 삼장에 정통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체계화된 교학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실론 비구들의 잠재된 능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실론(스리랑카)이 국가로서의 경제적 군사적 소국이다 보니, 세계무대에서의 입김은 약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세계불교계에서는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으나, 최근의 추세로 본다면 실론 출신 비구들이 태국 일본 미국 등지에 진출해서 다른 전통의 불교에 대한 경험을 쌓고 있는 것은 특이할만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보고 느낀 실론불교의 모습은 부처님 승가에의 부단한 회귀라고 본다. 부처님 승가와 인도의 원형불교의 전통을 간직하고 복원하려는 정신이라고 보고 싶다. 실론불교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원칙을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버마불교는 또 어떠한가.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버마 불교는 실론불교 보다도 승가가 더 승가답다고나 할까, 실론에서 전해준 실론과 인도불교의 원형을 실론보다도 더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한국이나 베트남 타이완이 중국본토 보다도 더 당송시대의 불교 전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듯이, 버마는 중세시대 실론 불교 더 나아가서, 인도불교의 원형에 맥이 닿는 그런 불교와 승가를 간직하고 유지하고 있다는 평을 하고 싶다. 일정부분, 버마에서 독특하게 더욱 발전된 면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론이나 인도의 원형불교에 맥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2:군사정부에 항의성 행진을 하고 있는 버마의 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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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에 가보면 알겠지만, 버마불교 승가는 정말 부처님 시대, 실론불교의 전성기 때, 남인도 불교의 최전성기 때의 승가모습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비록 군사정부이지만, 불교에 대한 후원은 절대적이다. 불교를 국교 수준으로 후원하고 보호하고 있다. 최근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버마 비구들의 민주화 노력 또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버마 비구들의 학습은 너무나 강렬하다고 하겠다. 버마 비구들의 수행이나 학습하는 모습은 태국이나 실론 라오스 캄보디아보다도 더 강도가 세다고 본다. 교학을 배우고 연구하고 전법활동을 보면, 너무나 적극적이라고 진단하고 싶다. 또한 버마의 일반 불자들의 명상수행 또한 진지하고 그 숫자 또한 많으며, 신행활동도 적극적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가보면 알겠지만, 버마 불교의 열기는 그야말로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활력소가 된다. 버마의 모든 국민이 불교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버마 불교는 부처님 승가와 부처님 시대의 불교를 구현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신해행증(信解行證)을 실천하고 있는 정통 부처님 불교를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태국은 또 어떠한가. 태국승가는 너무나 청정승단이다. 비구들의 일상은 오직 수행과 전법포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도 부처님 시대에 행해졌던 탁발을 하고 있다. 매일 이런 탁발공양을 한다는 것은 부처님 불교의 모습을 지키고 간직해서 그대로 실천한다는 원칙주의적인 믿음 때문이다. 태국불교는 실론 버마와 마찬가지로 상좌부의 종주국이다. 라오스 캄보디아도 태국 불교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베트남은 대승과 상좌부가 공존하고 있다.

사진3: 태국의 비구들이 붓다몬톤의 서있는 부처님 상을 참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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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불교는 실론에서 전해져 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태국불교를 실론에 역수출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실론불교의 계단이 붕괴하자, 태국과 버마에서 계맥을 다시 이어왔기 때문이다. 실론불교가 적당하게 승가를 복원하지 않고, 태국과 버마에서 계맥을 다시 전승해 온 것은 부처님 승가로 회귀하여 복원한다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의 원형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신념에 의한 근본주의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계맥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 잘 모를 일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해괴한 논리를 펴서 계맥의 정당화를 꾀하고 있는데, 모두가 동의하는지 의문스럽다. 더 이상 한국불교에서 이 부분(계맥)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논란의 소지가 충분하고 일부 세력에서 강하게 밀고 나가고 있어서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라오스 캄보디아의 상좌부 승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소개하지 않아도 태국승가와 비슷한 양상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베트남도 남서부의 캄보디아 국경을 중심으로 상좌부 비구들이 많다. 이것은 캄보디아 영토가 베트남에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캄보디아 비구승가가 베트남 국적을 갖다보니 이런 현상이 생겼다고 본다.

티베트 불교는 후기 대승불교가 티베트에 전해졌기 때문에 남방 상좌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렇지만, 필자의 눈에 비친 승가의 모습은 비슷하다고 본다. 교리나 사상 철학은 체계가 다르지만, 승가의 모습은 비슷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사 색이 좀 다르고, 디자인이 좀 다르고 착용방식이 좀 다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도에서의 불교가 7세기에 이르면 힌두와의 어느 정도 타협 아래 승가의 모습, 특히 의례가 다소 변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불교 교리상 내지 철학상의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이것은 불교가 생존 차원에서 당시 주류 종교로 부상한 힌두와의 상호 영향 때문이었다. 이런 불교가 티베트에 전해지다 보니, 티베트 불교는 남방 상좌부나 중국불교(漢譯佛敎)와는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승가공동체는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필자의 눈에는 승가공동체가 크게 변질된 것이 없다고 보는데, 외형상의 모습은 크게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동소이하다고 느껴진다.

사진4: 티베트 비구(라마)들이 한 의례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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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 승가는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장을 채택하고 있는데, 족보를 따지면 상좌부의 율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티베트 불교 역시 승가공동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처님 승가에로의 복원운동이다. 세속화하지 않고, 승가공동체를 유지하면서 흩어지는 승가를 경계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티베트 본토에서 인도로 옮긴 티베트 라마들은 티베트 본토에서와 마찬가지로 집단공동체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 것이다. 흩어지는 공동체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티베트 불교 승가의 강한 신념이라고 하겠다. 티베트 불교 승가 공동체도. 철저한 승가공동체내에서의 수행 교육 전법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상좌부 불교 승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불교는 티베트 불교보다도 6백년이 앞선 기원 전후의 인도불교의 모습에서 수용된 불교라고 하겠다. 다만, 북인도인 카슈미르나 간다라 등지의 불교, 더 나아가서는 중앙아시아인 서역불교가 중국에 전파되었는데, 2천년이 경과하면서 중국불교화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계맥은 족보가 분명하다. 법장부의 <사분율>에 의한 구족계 전통이 중국에 전파되었고, 이 계맥은 당연하게 한국 일본 베트남으로 이어졌다. 중국불교 그 자체는 정치적 격변과 더불어서 부침이 있었지만, 승가만큼은 항상 공동체를 지향해 왔다. 현재의 중국불교도 마찬가지로 승가공동체의 맥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불교에서 전파된 일본불교의 계맥은 단절되어 버렸다. 일본불교에는 계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한국불교의 계맥에 대한 딜레마를 생각해봐야 한다. 다행하게도 한국불교는 정화운동을 통해서 승가공동체 불교가 다시 복원되었다. 문제는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서 이런 승가공동체 불교가 약화되려고 하는 시점에 있다고 본다. 한국불교의 생명과 미래는 바로 승가공동체의 건강한 복원이며, 부처님 승가에로의 회귀이다.

해동선림원=지도법사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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