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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2-02, (목) 12:44 pm 

가입일: 2016-11-29, (화) 5:42 am
전체글: 427
사진1: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정진하는 부처님 고행상.
noname01.jpg

이 지구상에 불교라는 종교가 한국 땅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만 존재한다고 해도 그렇지, 지난 2-3년간에 한국 땅에서 일어난 한국불교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이상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인식일까. 모르긴 해도 제법 되지 않을까 하고 공감대 형성을 은근히 바라면서, 담론을 전개해보고자 한다.

사실, 지난 2-3년간 우리 불교계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특히 승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제1 제2종단이라고 하는 소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장자 차자 종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우려를 해보는데, 과거와는 전연 다른 행태가 일어나도 제어가 되지 않으면서 통제 밖의 괘도로 굴러가버린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현상을 보고 비판적 시각으로 정리해 주는 오피니언 리더그룹의 부재라고 보는데, 극히 일부의 인터넷 매체를 제외하고는, 불교계의 언론기능은 이미 마비 상태라고 진단하고 싶다. 어느 특정 단체만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언론 파수꾼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학술지나 교양지 역시 불교계의 이런 시사적인 문제나 종단의 현안에 대해서는 전연 입을 벙긋하지 못하는, 오히려 학문 카르텔을 형성해서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개진을 차단하는 것 같은 경향마저 있는 것 같다.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가 이렇게 물이 고여 썩는 정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과연 불교가 제 기능을 하고 중생들을 위한 종교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과연 가능할는지 극히 의심스럽다.

사진2: 보리수아래서 정진하는 고오타마 싯다르타.
noname02.jpg

남방불교국의 버마나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데를 가보면, 비구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치열한 수행단체로서의 제자리에 서 있다는 감동을 받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승가가 살아있다는 점이다. 인도불교의 원형을 간직한 부처님 승가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은 불교가 살아 생생하게 계승되고 있다는 어떤 진한 감동과 부처님 승가의 영속성을 감지하게 된다. 남방 불교사를 통해서 보는 상좌부 불교의 운명은 부단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생존해 오고 있는 어떤 끈끈함이 흐르고 있음은 비구들의 의지와 부처님 승가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북인도를 경유하여 중앙아시아 지금의 신장 지역인 서역을 거쳐서 중국에 전해진 불교, 지난 2천 년 간 동아시아의 주류 종교의 하나로서 존재해 오면서 유구한 역사와 불교문화를 남기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사에 있어서 한반도에서 전개된 불교는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박해를 받고 침체를 면치 못하다가 이제 겨우 1세기 전부터 그나마 불교란 이름을 되찾는 듯 했으나, 일본식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어떻게 되었는가. 불교란 이름은 되찾았으나, 승가는 왜색의 옷을 입게 되고, 비구의 순수성을 상실한 대처불교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승가의 본분을 지킨 일단의 비구 그룹이 있었고, 해방 후 이들에 의해서 한국불교는 제대로 된 부처님 승가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60년 사이에, 이런 비구승단의 순수함을 은근히 이용하여 위선의 옷을 입은 일부 마군들이 섞여 있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우리 불교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이런 무리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금력을 장악해서 승가의 본분과 기능을 마비시키고 승가 풍토를 이상야릇하게 이끌고 간다면 되겠는가.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여 있다면 반드시 구축되어야 할 사마외도 보다 더 무서운 사자충이다.

지난 2-3년간 한국불교의 위상과 권위는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있다. 불교내부의 신도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재정의 투명화를 외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경제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시장경제 체제이다. 이런데 익숙한 신도 간부들은 사원 경제의 흐름을 민감하게 주시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비정상적으로 사용하게 됨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대체로 사찰의 신도 간부들은 경제력이 있는 신도들로서 한국경제의 흐름을 그래도 어느 정도 체감하면서 사는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사원경제의 불투명은 참기 어려운 불편한 경제운용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승가를 보는 눈인데, 특히 불교지성인들의 눈에 보이는 일부 승가의 행태는 도저히 그냥 넘기기 어려운 윤리.도덕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범계행위마저 그냥 넘어가는 종단의 자정능력과 감찰 기능에 대해서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종단 자체 내에서 자정이 안 되고 공정한 상벌이 집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법치시민의 입장에서 본 이 같은 비 불법적인 행태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불교의 대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주류 종교로서의 권위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불교 지성인들이 바라보는 한국불교의 위상과 권위이다. 침묵을 지키자니 자신이 불교도로서의 자존심이 있는 재가불자인지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불교가 한국 땅에서 이렇게 추락해도 되는 건가하는 자괴감에서 외부의 불교지성인 그룹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불교내부의 지성인 그룹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는데, 우선 경제적으로 불교 그것도 승가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밥통을 박차기에는 너무나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생각은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고, 힘이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교 외부 지성인들의 목소리에 맞대응할만한 이론도 명분도 없는 입장이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몇몇 지성인들은 구태의연한 녹음을 반복하면서 공산의 메아리 같은 공허한 노래만 부르는 것으로 맥 빠진 괴변의 논리를 펴면서 그나마 생존전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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