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리카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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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강좌4

<facebook 붓다의 메아리 연재>

불교철학의 역사적 전개

인도불교철학의 역사

원시불교의 철학사상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가 살던 시대는 우리(중국)의 춘추시대와 마찬가지로 백가쟁명의 국면을 나타내고 있었다.

당시 古印度에서는 우주, 사회, 인생의 문제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종국에는 크게 두 개의 대립된 사조, 곧 바라문의 守舊사상과 사문의 革新사상으로 귀결되었다.

바라문교는 당시 통치계급 지위에 있던 사람들의 종교이다. 그들은 <베다>를 하늘에서 내려준 신성한 책으로 여겨 절대 고칠 수 없는 경전이라 하였다. 또 범천, 비쉬누, 쉬바를 받들어 3大 主神으로 삼았는데, 이들이 이른바 우주의 창조’, ‘유지’, ‘훼멸을 분담하는 대표자이다.

바라문교는 베다 天啓, 제사 만능, 바라문 최고를 3대 강령으로 삼았다.

바라문교에서는 또한 사회의 4계급을 모두 이 낳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입으로는 바라문(사제)을 낳고, 어깨로는 크샤트리아(무사)를 낳고, 배꼽으로는 바이샤(농민, 수공업자, 상인)을 낳으며, 다리로는 수드라(,노예)를 낳는다. 그리하여 사회에는 고저귀천의 불평등한 차별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바라문교는 선악에 보응이 있음과 생사는 윤회한다는 미신을 퍼뜨리고, 사람의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전생의 형태에 따라 바라문교의 교의행상에 따를 수 있느냐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즉 앞의 세 부류는 종교를 믿고 귀신을 제사지내며 사후에 승천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수드라는 근본적으로 종교의식을 거행할 권리가 없어 자연히 사후에 영혼이 승천할 수 없다고 한다.

당시 바라문교에 반대한 유파로는 자이나교가 유명한데, 그들은 업보 윤회와 영혼 해탈, 고행주의, 淸淨 染汚의 윤리학설을 신봉한다. 그들은 어디에도 있지 않는 곳이 없는 영혼을 半物質的 실체라 여기고, 그것은 자기가 의지하고 있는 몸체와 비례하여 그 몸체가 커지는 데 따라 같이 커진다고 한다. 도덕상의 염오는 깨끗하지 않은 미세한 물질이 피부의 구멍을 통해 영혼의 내부로 진입하여 생긴다. 그러므로 반드시 도덕상의 청정을 획득하여 더러운 물질이 들어오는 통로를 막으면 영혼이 최종적인 열반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해탈이다. 이를 위해 자이나교는 5가지 계율을 제시하였다.

(1) 살생하지 말 것 (2) 속이지 말 것 (3) 훔치지 말 것 (4) 간음하지 말 것 (5) 사사로운 재물을 경계할 것

또한 절식(絶食), 못박힌 침대 위에서 잠자기, 햇볕 쬐기, 불 쬐기 등의 고행을 주장하여 자신의 육체를 단련하다.

順世論도 있었는데, 이것은 고인도의 유명한 유물론이다. 이들은 세계만물을 구성하는 독립상존하는 원소를 地 水 火 風(4)이라 하여 사람과 세계가 모두 4대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사후에는 4대로 돌아간다고 하여,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생의 목적은 쾌락을 얻어 만족을 구하는 데 있다고 하면서 윤회, 업보, 제사, 고행 등을 반대한다. 이 학설은 바라문교에 대한 가장 격렬한 비판과 반항이었다.

그 외에 직관주의학파가 있었는데 이 파는 일체의 문제에 대해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강조하였고, 결정적인 학설을 제기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내세의 유무, 과보의 유무에 대하여 그들은 있다고 말하면 있고, 없다고 말하면 없으며, 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붙잡기 어려운 미꾸라지같은 학설이라고 불렀다. 이 파는 실제적인 선정을 닦아 진정한 지혜를 얻을 것을 주장한다.

그 밖에 서로 비슷한 학설을 주장하는 세 파가 있었다.

하나는 ‘7원소설인데, 그들은 인간이 地 水 火 風 苦 樂 영혼()이라는 7원소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중에 하나라도 떨어져나가면 곧 죽는다고 한다. 여기서의 원소는 결코 다른 무엇에 의해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다른 무엇을 만들지도 않는다. 원소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주장은 운명론설인데, 인생이 모든 운명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한 개인의 의지는 힘이 없고, 윤리도덕도 하등의 의미가 없으며, 수행도 쓸모없고, 업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하나는 우연론설인데, 이 설에 의하면 세계의 일체의 사물의 탄생과 발전이 모두 우연적이어서, 이에 근거해서 도 없고 도 없으니 욕구대로 내버려둘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일종의 윤리적 회의론이고 종교적 부정론이다.

이상의 몇몇 학설은 구체적 관점은 다르지만 바라문교의 정치, 사상통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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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창립한 불교사상 또한 당시 沙門들의 사조의 일종으로, 바라문 사조에 대항한 중요한 학설이다. 그것은 당시 다른 沙門들의 사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동시에 독창적인 주장도 내놓았다. 후에 석가모니의 인생철학사상은 바라문철학을 압도하였고, 따라서 점점 광범하게 전파되었다.

현존하는 불교전적 자료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종교도덕의 실천문제였는데, 이것은 곧 인생철학문제로 귀결된다. 그는 당시 사상계가 공동으로 느끼고 논쟁을 전개한 본체론의 문제,

예를 들면 세계는 변함이 있는가 없는가, 세계는 끝이 있는가 없는가, 생명과 몸은 하나인가 둘인가, 생명이 끝난 후는 있는가 없는가 하는 등등의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문제는 인생과 무관하다고 하여 이런 문제를 토론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을 때 먼저 독화살을 뽑아 치료는 하지 않고, 먼저 이 화살이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활은 어떻게 생겼는가를 묻는 것과 같아서 이런 질문은 본말이 전도되어 조그만치의 이익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원시불교철학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인생철학이라 할 수 있다. 

전승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출가 후,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인생의 고통을 벗어나려는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먼저 고행을 실행했는데, 7일간 1끼만 먹고(스스로 굶는 법), 사슴가죽 나무껍질을 걸치고, 사슴똥 소똥 위에서 잤다. 6년이 지나니 몸은 수척하여 생김새가 마른 나무처럼 되었는데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그는 밥을 먹기로 결심하고, 보리수 아래에서 책상다리로 정좌하여 깊은 명상에 빠지기를 7일 낮과 밤 동안 하니, 마침내 인생의 고통의 근원이 인식상에서의 無明과 사상에서의 煩惱에 있음을 알았고, 세계 만물이 변화하니 인생도 무상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외부의 물질에 대한 추구를 버리고, 私心邪心을 제거하고, 권력에 대한 욕망을 끊어 많은 을 행하면 내세에 좋은 運命을 만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하여 正覺’(大智慧)를 얻고, ‘佛陀’(크게 깨달은 覺者), 이 되었다. 

원시불교의 이론의 중심은 四諦설이고, 이론의 기초는 緣起설이다. 원시불교시기에는 전반적으로 석가모니가 생전에 선양한 교의를 보존하고 있었고, 불교 내부에 어떤 분파도 없었다.

석가모니는 인생현상을 개괄하여 두 측면을 가진 네 가지 정황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한 측면은 염오한 것인데 을 포괄하고, 다른 한 측면은 청정한 것인데 를 포괄한다. ‘는 고통이라는 현상이고, ‘은 고통을 낳는 원인이며, ‘은 고통을 없앤 결과이고, ‘는 고통을 없애는 방법이다. 이로부터 보면, 고 집 멸 도 4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고제이다. 석가모니의 인생철학은 실질적으로 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고통이라는 현상의 원인과 이 고통을 없애는 방법을 깊이 탐구한 학설이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처음 사제를 말할 때 세 번 반복했다고 한다. 그것을 차례대로 보면 처음에는 사제를 긍정하고 사제의 내용을 해설했는데, 예를 들면 사람의 , , , 가 모두 괴로움이라는 내용이었으며, 두 번째는 사제가 인생 중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강조하여, 사람들은 마땅히 고통의 현상을 알아서 고통을 낳는 원인을 제거하고, 열심히 수도하여, 고통을 제거하고 난 후의 평정한 상태를 구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세 번째는 자신이 이미 사제설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켰고, 또한 인생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여, 고통을 만드는 원인을 제거해서 열심히 수도하여 고통을 없앤 이상적인 경계를 증득했음을 거듭 말하였다. ‘사제설은 원시불교의 기본이론이고, 그것은 계속해서 후대의 불교학자에 의해 승인되고 계승되어, 불교의 각 학파가 모두 공통으로 신봉하는 근본교의가 되었다. 

석가모니는 계속 인생의 과정을 관찰하고 인생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었다. 예를 들면, 5부분, 9부분, 10부분, 12부분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12부분이다. 이것은 12인연이라고도 불린다. 12인연의 명칭은 나중에 정립된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無明, (2) , (3) , (4) 名色, (5) 六處, (6) , (7) , (8) , (9) , (10) , (11) , (12) 老死. 석가모니는 老死로부터 12인연을 찾아 나갔다.

12인연의 서열구조에 따라서 말하면, 무명(무지)이 연이 되어 을 일으키고, 이렇게 점차로 진행되어 그것은 을 연으로 하여 노사를 일으키는 데까지 이른다. 이것은 곧 12인연이 서로가 인과관계를 가진 하나의 서열을 이루어 앞의 조건이 뒤의 과를 일으키고, 뒤의 과는 다시 인이 되어 계속 다른 과를 생기게 한다. 인생은 이러한 12개의 서로 상관관계를 가진 고리로 형성되는데 이것이 곧 이것이 있는 까닭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난 까닭에 저것이 생긴다는 공식이다. 이것이 연기설의 전형적 설명이다.

석가모니는 인생의 과정을 분석하는 데서 출발하여 연기설을 내놓고, 세계의 일체 현상은 모두 인과관계에 있으며, 상호 관계하고, 의지하며, 서로 조건이 되고 인과가 된다고 생각했다. 

석가모니는 하나의 인이 여러 과를 낳는다는 설에 반대하였고, 또 여러 인이 하나의 과를 낳는다는 관점에도 반대하여 일체의 사물이 서로 인과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연기설 이론의 기초 위에서 석가모니는 인생에 관한 3대 명제를 내놓았다.

그것은 諸行無常’ ‘諸法無我’ ‘一切皆苦이다, 이 세 가지를 三法印이라 부른다. 이것은 인생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세 가지 근본적인 관점이며, 또한 불교를 다른 유파와 구별지우는 근본표지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연기설이 세계현상을 포괄하게 됨에 따라 우주관의 의미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기론은 원시불교의 우주관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원시불교의 철학은 뚜렷한 中和的 경향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는 한편으로는 세속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고 현실세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이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涅槃-寂滅의 경지-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하는 소극적인 염세사상을 선양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布施, 持戒를 강설하여, 을 좋아하고 베풀기를 즐기면 내세에는 좋은 보응을 받을 수 있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 종교의 실천에 대해서 석가모니는 고행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또한 욕구대로 향락하는 것을 반대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中道學說을 내놓았다. 그래서 無常苦海에서 부침하는 중생에게 지켜야 할 수행의 방법과 마음의 안정을 주어 일반 대중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불교학설은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원시불교의 철학은 또한 이론상에 내재적 모순(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을 포함하고 있는 듯 생각된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는 인생의 無常을 말하여 일체 현상이 모두 연기하는 것이며, 서로 인과가 된다고 하면서, 동시에 열반이라는 영구한 상태를 궁극적 이상으로 삼았다. 이것은 앞뒤가 모순(상반)되는 것이어서, 그 설을 조화시키기가 어렵다. 또 그는 인생이 無我임을 주장하여 자아의 존재를 부정했는데, 동시에 또 사람들의 業力 즉 사상, 행위의 작용을 인정했다. 자아의 존재가 부정되면 윤회(업력)의 주체가 없게 되는데 그 개별적 생사윤회는 업력에 의한 필연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윤회의 주체가 부정되었는데 그 개별적 윤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원시불교는 이러한 문제들과 함께 연기이론의 철저성에 의한 명확한 해명을 못한 채, 석가모니의 열반으로, 이후에 이런 모순(명확성의 논쟁)의 해결을 찾기 위해, 곧바로 후계자들의 이론적 분기를 낳았으며, 각각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게 하였다. 이때부터 불교는 이설이 분분한 여러 유파가 수립되는 부파불교시기를 맞게 된다.

*** <方 立 天 불교철학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