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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붓다의 메아리 연재>

불교철학의 구성과 유파

불교철학의 기본유파

불교철학 이론은 주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 양대 계통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인도불교는 흥기하면서부터 쇠락하기까지 전후 약 1,500여 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는 원시불교로부터 부파불교, 소승불교, 대승불교의 도래와 발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가 있다. 인도불교철학을 종합적으로 보면, 소승의 有部(婆娑), 說經部, 대승의 중관학파(空宗), 유가행파(有宗)의 4대 종파가 가장 중요하고, 철학사상도 가장 풍부하다. 그러므로 이 4대 종파가 기본적으로 인도불교철학의 전체를 개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교는 兩漢시대에 중국에 들어온 이후 송대에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불교가 번영했던 시대는 東晉, 南北朝, 隋唐時代의 약 600여 년간이다. 이 기간에 중국불교는 학파의 성립에서부터 종파의 수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겪었다. 종파는 判敎로써 기본표지를 삼았다. 판교란 불교의 여러 불전과 각 파들을 통일적으로 배치한 것인데 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종경을 부각시키고 자신들의 종파의 지위를 가장 높은 곳에 두었다. 중국불교 종파 중에서 수당시대의 天台宗, 三論宗, 法相有識宗, 華嚴宗, 禪宗이 철학적 색채를 가장 풍부하게 띠고 있는 종파이다. 이 중에서도 천태종, 화엄종, 선종이 가장 창조적인 종파이며, 중국화된 불교종파이다. 이 세 종파의 불교철학은 이미 중국 전통의 철학사상과 다르고, 또 인도불교의 철학사상과도 다르다. 이것은 인도불교의 사상을 흡수하고 중국 전통사상을 참작하여 소화-융합을 거쳐서 성립된 새로운 철학이론이다. 이 세 종파의 철학사상이 곧 중국 불교철학사상의 주체이다.

그러나 중국 불교철학이 비록 인도 불교철학과는 다르다고는 하지만, 두 가지 기본노선은 일치한다. 인도와 중국의 대승불교를 종합하여 보면, 철학사상의 유형별로는 두 개의 계통 혹은 두 개의 기본유파로 나누어지니 곧 空宗과 有宗이다. 공종은 그들이 ‘一切皆空’을 선양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도의 대승공종은 중관학파이다. 이것은 소승 유부의 사상을 비판하고 창립된 것이다.
소승 유부는 세계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과거, 미래, 현재의 시간 안에서 실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대승 공종은 모든 사물과 현상은 실체도 없고 자성도 없는 공(空)이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불교도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경계이며 궁극의 도달처인 ‘열반’조차도 공이라고 한다. 공종의 이론이 철저해지면 철저해질수록 이론과 실천 간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론적으로 열반이 공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천적으로는 오로지 해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후에 대승 유종의 이론가들은 이러한 공종의 관점에 반대하였다. 즉 열반경계의 존재를 긍정하고, 세계의 모든 현상은 궁극의 실체-‘識’을 가지고 있음을 긍정하였다. 이 파가 ‘識’이 있음을 주장하는 까닭에 有宗이라 이름지어졌고, 또한 유가행파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인도대승불교의 공-유 두 종파는 세계를 보는 기본관점 즉 객관세계의 존재성을 부인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공종 또한 有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공종의 기본적인 주장은 불교의 관점으로부터 본다면 객관세계는 공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공의 의미는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실체가 없고 자성이 없음을 말한다. 반면에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객관세계는 존재하지만 그것은 假有일 뿐, 眞有가 아니라고 한다. 이것이 곧 眞空俗有設이다. 유종도 역시 ‘無’를 말하고 ‘空’을 말한다.(無와 空의 의미는 같다) 유종은 중생에게 ‘識’ 또는 ‘心’이 있음을 인정하는데, 이것이 내재적 실존이다. 그러나 外境 즉 객관세계에 이르면, 그것은 無이고 空이다. 이것이 바로 內有外無設이다. 공-유 두 종파의 차이점은 주로 유종이 ‘識’의 실존을 긍정하고 열반경계를 긍정하는 반면, 공종은 ‘識’과 열반경계가 모두 空이라 하는 데에 있다.

인도불교의 대승 공종의 전적은 구마라집 등의 번역을 통해 중국에 전파되었다. 중국불교의 공종 이론에는 주로 두 개의 사조가 있으니, 하나는 晉代에 형성된 般若學派이고, 다른 하나는 수당시대의 三論宗이다. 이 학파와 종파는 인도 공종의 이론이 발전한 결과로 생겨났다. 그러나 그 발전에는 한계가 있어서 신선한 견해를 제공한 것은 많지 않다.
인도불교의 대승 유종의 전적은 玄奬 등의 번역을 거쳐 중국에 전파되었다. 중국의 法相有識宗은 현장과 그 제자들이 창건한 것이다. 이 종파의 주장을 현상론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과 현상의 상태, 성질을 분석하여 그 종파의 교의를 밝히는 데 치중하였기 때문에 法相宗이라 하고, 본체론의 입장에서 보면 일체의 현상은 유식이 변한 것이라는 데 치중하여 논했기 때문에 有識宗이라 한다. 중국의 법상유식종은 기본적으로 인도의 유종의 이론을 옮겨놓은 것이어서 창조성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에 있어 대승불교는 法性宗, 간략하게는 性宗의 출현으로 최대의 발전을 보았다. ‘性’이란 일체 현상의 본체이며, 현상의 체성이다. 이것은 또한 ‘法性’이라고도 하는데 ‘眞如’ ‘佛性’ 등의 개념의 의미와 상통한다. 성종은 ‘법성’이 일체 현상의 본원이고 본질이라고 주장한 데서 얻어진 이름이다.
법상종은 간단히 相宗이라고 한다. 상종과 성종이 합하여 중국불교의 유종을 구성한다. 중국불교의 유종은 인도불교의 유종과 비교할 때, 그 의미에 있어 새로운 내용을 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진여’, ‘법성’, ‘불성’이라는 최고의 정신실체의 존재와 작용을 인정한 것이 그것이다.
‘진여’, ‘법성’, ‘불성’의 관념은 그 근원을 인도불교의 대승경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러한 관념을 선양한 <법화경>과 <화엄경>은 인도에서보다는 중국에서 영향력이 매우 커서 ‘법화경’을 종경으로 삼는 천태종과 ‘화엄경’을 종경으로 삼는 화엄종을 형성케 하엿다. 이 두 종파는 모두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또 일체 만유는 ‘진여’, ‘법성’, ‘불성’으로써 본원을 삼는다 하며, 일체 현상이 모두 ‘진여’, ‘법성’, ‘불성’으로부터 발원하고 또한 ‘진여’, ‘법성’, ‘불성’으로 귀결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을 ‘성종’이라고 하는 것이다.

禪宗의 기본사상은 성종과 비슷하여 사람마다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진여’를 일체 현상의 본원으로 삼는다는 관념이다. 그러므로 역시 성종에 속한다.

상종과 성종의 차이는 상종이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설법에 반대한다는 데 있다. 성종은 어떤 종류의 사람은 결코 성불할 수 없다고 하여 거듭 ‘진여’를 세계본질의 관점으로 삼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일체가 모두 주관적 유식이 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성종이 비록 유종에 귀착한다고는 하지만, 성종의 사상 또한 공종에 근원을 두고 있으니, 공종의 기본 전적 예컨데 <中論>, <十二門論>, <百論> 등은 모두 천태종, 화엄종, 선종이 성립하게 되는 중요한 근거임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그러므로 천태종과 선종의 몇몇 유파는 어떤 의미로는 공종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상 객관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관점으로부터 본다면, 불교의 거의 대부분의 유파는 모두 전체 세계가 공이라고 보므로 空派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승불교는 모두 공파이다.

사유와 존재, 의식과 물질의 관계에 입각해서 고찰하면, 불교는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점 인생과 우주의 범위를 다루게 됨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사유와 존재, 의식과 물질의 관계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소승불교는 이원론의 경향을 띠는데, 대승불교에 비교해서 말하면 소승의 몇몇 유파는 비교적 유물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주류는 유심주의이다.
대승불교의 공, 유 두 종파에 이르면 그 철학노선은 모두 유심주의적이 된다. 불교의 각 파의 이론의 중심기조를 관철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행위란 마음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어서, 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계의 영향은 사람에 대한 속박이다. 속박을 벗어나는 것은 외계가 거짓임을 깨닫고 내심의 추구와 修持에 집중하는 데 있다. 이것은 곧 인생의 해탈목적은 반드시 마음의 실현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불교유심주의의 근본적인 특징이 있다. 어느 시기와 특정 영역에서는 불교내부에 유물주의와 유심주의의 투쟁현상이 있었으나,--예를 들면 부파불교 正量部 학자가 유가행파에 반대한 투쟁이 일례이다--전체 불교사상사에 있어서는 매우 짧은 시기의 한 사건에 불과했으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이것을 철학의 기본경향으로부터 보면 불교내부에서는 결코 유물주의와 유심주의라는 두 노선의 투쟁은 존재하지 않았고, 여러 형태의 유심주의 노선만이 불교의 여러 유파를 관철하고 불교사상 시종 일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方 立 天 불교철학개론>